[제언] 새 정부가 하면 안 될 ‘노동법제’ 3가지-윤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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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새 정부가 하면 안 될 ‘노동법제’ 3가지-윤효원

윤효원 27 2025.05.17 12:46

[제언] 새 정부가 하면 안 될 ‘노동법제’ 3가지: 

- 주 4일제법, 사회적 대화 기구법, 일하는 사람 기본법



윤효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노동자가 누리는 권리와 이익의 크기는 노동자가 행사하는 권력의 크기에 비례한다. 권력은 단단한 조직과 치밀한 전략을 전제한다. 조직과 전략이 뒷받침하지 않는 소통은 무기력하다.  12.3 내란으로 촉발된 권력 재편기에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움직임이 무기력한 이유는 노동운동에서 효율적인 조직과 효과적인 전략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지도부를 장악한 정파는 진보당의 방침을 따라 민주당과의 연정을 꿈꾸고 있다. 그에 반대하는 그룹 중 일부는 정의당의 당명을 민주노동당으로 바꾸고 독자 후보를 출마시켰다. 여론조사를 보면 진보당의 지지율은 1% 안팎에 그치고, 정의당 후보의 지지율은 0%대에 머무른다. 오래 전부터 한국노총은 민주당을 통한 정치세력화 노선을 택했다. 



수세적 권력 재편기의 과제: 87년 체제의 '완성'


철학자 한병철은 “폭력과 혼란은 포괄적인 권력이 부재하는 곳에서, 권력의 담지자여야 할 정치적 혹은 사회적 심급과 기관이 붕괴하는 곳에서 확산되는 것”이라고 썼다(<권력이란 무엇인가>, 문학과지성사). 


윤석열의 내란이 성공했다면 대한민국은 폭력과 혼란의 아수라장으로 변했을지 모른다. 윤석열의 내란이 실패한 이유는 내란 세력의 조직적 응집력과 전략적 치밀함이 약했기 때문이다. 지배층 내부의 소통도 부실했다. 반대였다면, ‘87년 체제’라 불리는 헌정질서는 붕괴되었을 것이다. 


윤석열 이후의 과제로 많은 이들이 87년 체제의 ‘청산’을 말하지만, 나는 87년 체제의 ‘완성’이 여전히 중요한 과제라 생각한다. 윤석열 부류들도 떠들어대는 ‘7공화국 출범’이 아니라 ‘6공화국 완성’이 문제다. 노동자 민중 세력을 포함한 민주진영의 권력자원과 권력의지, 그리고 조직과 전략과 소통의 상태를 따져보았을 때 더욱 그러하다. 지금은 공세적 국면이 아니라 수세적 국면이다. 



‘주 4일제’ 문제 


수세적 권력 재편기에는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열정에 들떠 냉정함을 잃고 비과학적인 것을 구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대표적인 문제가 ‘주 4일 법제화’ 혹은 ‘주 4.5일 법제화’다. 


지불능력이 되는 기업이나 교섭력이 있는 업종에서 노사가 자율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권장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주 5일제와 주 40시간도 그림의 떡인 노동자가 부지기수다. 이들의 상태를 개선하는 것이 새 정부의 첫 과제가 돼야 한다. 근로일수를 줄이자면서 하루 근로시간을 8시간에서 9시간으로 늘리자는 조삼모사(朝三暮四) 식의 주장에 현혹되서는 안 된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 문제 


1970년 청년 전태일이 외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요구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 하층 노동자들에겐 허공의 메아리다. “근로기준법은 사라지고 전태일만 나부끼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 적용의 확대를 고민해야 한다. 법기술자들은 근로기준법이 고용관계가 분명한 노동시장 중상층 노동자를 위한 법이라는 논리를 유포시켰다. 이에 세뇌되어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적용을 포기하자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 법제화’류의 주장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근로기준법을 시대에 맞게 고쳐 적용 범위와 대상을 확대하려는 논리 개발은 하지 않고, ‘일하는 사람 기본법 법제화’라는 미봉책이 대안이라며 매달리는 행태는 볼썽 사납다. 이게 법제화된다면, 그 내용의 추상성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적용대상과 적용범위와 관련된 해석을 둘러싼 ‘시장’에서 관료, 교수, 변호사, 노무사만 배불리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노동문제의 본질이 법률 해석 문제로 희석되는 것이다. 



‘사회적 대화 법제화’ 문제


‘사회적 대화기구 관련 법제화’ 주장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권 시절 노사정위원회법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으로 바꾸었지만 제대로 된 사회적 대화가 이뤄진 적이 없다. 당시 법개정은 대표성이 떨어지는 여성단체나 청년단체, 비정규단체를 사회적 대화의 주체로 내세우는 우를 범했다. 이는 조직 노동의 정통성과 대표성을 약화시키면서 결과적으로 문재인 식 사회적 대화가 붕괴하는 데 일조했다.  


지금 우원식 국회의장실을 중심으로 국회 중심의 사회적 대화기구를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국회가 가진 권력과 자원은 제한적이다. 더군다나 국회는 ‘정치적 대화’의 장이지 ‘사회적 대화’의 장이 될 수 없다. 자신의 기본 임무인 정치적 대화도 제대로 못 풀어가는 국회가 상설적인 사회적 대화 구조를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내란 와중에 뜬금 없는 개헌 주장으로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현재의 국회의장이 바뀌면 이 논의도 자연스럽게 사그라질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사회적 대화가 작동하지 않는 주된  이유는 법제도 미비 때문이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사회적 대화가 정보-협의-교섭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가진다고 강조한다. 국가와 자본이 제공하는 정보가 부실한 조건에서 사회적 타협은 언감생심이다. 노동조합 정치투쟁의 현대적 형태인 사회적 대화를 ‘야합’이라 편협하게 바라보는 노동운동 일각의 시각도 문제다. 사회적 대화를 둘러싼 현행 법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대화를 대하는 노사정 3자의 태도와 역량이 문제인 것이다. 



있는 법부터 챙겨야  


두 달 안에 있을 대통령선거를 이용하여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재계는 재계대로, 법기술자들은 법기술자대로 이런저런 노동관련 법제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새 정부가 이런저런 노동법제를 만들어 노동시장 질서를 복잡하게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미 있는 법제도를 잘 살피고 다듬어, 모자란 걸 채우고 보태는 게 중요하다. 현행 법제도의 적용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규모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왜 그들에게는 법제도가 적용되지 않는 지 제대로 조사된 적이 없다. 


임금체불액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지만, 임금체불의 종류와 특징에 대한 정보는 부재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임금체불의 원인에 대한 과학적 분석도 부실하기 그지 없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먼자다. 법을 만들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합법주의(legalism)를 경계해야 한다.   



새 정부의 과제

 

해 아래 새 것은 없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진정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개선을 원한다면, 혼란을 가중시키면서 노동시장 분단을 악화시킬 새 법을 자꾸 만들려 하지 말고, 노동시장 통일을 가져올 수 있도록 현행 법의 유연한 운용과 적용 확대에서 답을 구해야 한다. 


6.3 대선에서 당선이 유력한 이재명은 자신을 보수주의자로, 민주당을 보수정당으로 규정했다. 보수가 할 일은 무엇인가?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면서, 기존의 것을 갈고 닦는 것이다. 6.3 대선으로 등장할 새 정부는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들지 말고, 이미 있는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꼼꼼이 챙겨보길 바란다.  법을 새로 만들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노동문제에서 더욱 그러하다.


출처: 『e노동사회』 2025년 5월호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 2025.4.7.자에 실린 칼럼 “새 정부가 시행해선 안 될 ‘노동법제 3가지’”를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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